외국회사, Canonical 취업 도전기
By Homin Lee
지난 2022년 7월부터 3개월간 캐노니컬의 채용 프로세스를 밟아왔었습니다. 3개의 과제와 7개의 인터뷰를 했고,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분위기에서 마지막 인터뷰까지 마친 후 최종 탈락 메일을 받았습니다.
실패를 회고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죠.
왜때문에 이직하려 했나?
어느 날, LinkedIn에서 ‘어 이거 나인가?’ 싶은 채용 공고를 봤습니다. Canonical이란 영국 회사였고 다음은 job listing의 요약입니다:
- 한국 full-remote 근무 (한국 지사 없음)
- Go, Python 개발자
- Linux, Android System 경험 필요
- 유창한 영어 필요
- K8S 경험 우대
대부부의 사람은 이 회사의 이름을 모릅니다만, 가장 점유율이 높은 리눅스 배포판인 우분투 리눅스를 만든 회사이며, 다른 오픈소스 제품들과 클라우드 서비스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원하는 커리어 패스를 쌓고 있고, 인정받고 있으며, 사람들과 관계도 좋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카카오 본사의 구내식당을 외부인과 같은 가격으로 먹는다는 정도?
한국에서는 ‘카카오에서 일해’라고 하면 그냥 알아줄 정도로 회사의 평판이 나쁘지 않고, 뛰어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배울 점(워라벨 포함)도 많습니다.
제 경우 카카오에 입사한 후에 구글 HR 담당자에게 지원 권유를 매년 받게 되었다가 두 차례 고사한 후에야 멈추게 되었는데… 이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카카오 개발자들이 그만큼 유능하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리눅스를 사용해 온 사람으로, 글로벌 리눅스 회사에 내 능력으로 취업할 수 있다면 멋질 거로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채용과정
당연하게도 모든 과정은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K-영어를 배운 사람(어학연수 경험 없음)이지만, 다행히 영알못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어드벤처 PC게임을 하면서 영어에 입문
- 리눅스에서 한글 입력이 잘 안되던 시절을 겪으며 영어로 작업을 하는 데 익숙
-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공헌해 보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문화를 경험
- 카카오에 오기 전까지 외국회사에 채용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해 둠
그래서 공고를 보자마자, 온라인에 만들어 둔 영문 이력서를 토씨 하나 고치치않고 PDF로 변환해서 제출했습니다.
저는 필수조건인 유창한 영어를 여전히 구사하지 못하고, 우대사항인 k8s는 자격증만 따 둔 상태인 소위 장롱면허인데…
그거 아세요? 제가 채용해 본 입장을 비추어 보면, 완벽한 후보자 같은 건 환상 속의 유니콘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가진 이력서 정도면 현실 속에서 통할 것 같았고, 통했습니다.
어떤 과정이 있는지는 GlassDoor에서 쉽게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디테일은 채용 포지션에 맞춰 다르기 때문에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Written interview
우선 문서로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제 경우 답변을 채우니 7쪽 정도의 분량이 나왔습니다. 구글 문서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와, 아마도 인공지능이 개입한 것 같아 보이는, 문맥 수정 기능의 도움을 받아 답변을 다듬어 제출했습니다.
Phychometric assesments
Thomas PPA, GIA라는 지능 및 인적성 검사를 합니다. 지능검사는 영문으로 시험을 봐야 하지만 모국어가 아님을 고려해주기 주며 인성·적성검사는 한국어로 선택해서 시험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Thomas PPA 모의고사 pdf 파일을 찾아 구매해 어떤 유형의 시험이 나오는지 파악한 후 시험을 치렀습니다.
Initial screening interview
그제야 사람과 구글Meet으로 상대할 수 있게 됩니다. 30분짜리 짧은 인터뷰길래 루즈하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자기소개부터 인터뷰 단골 질문까지 빼곡하게 물어봅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영어 취업 인터뷰 클래스를 지원서를 제출한 다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탓에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Technical assessment
코테가 없는 대신 실무에 가까운 숙제가 나옵니다. 최대 5시간 걸릴 거라고 했는데, 제 경우 6시간(식사 포함)을 조금 넘겨서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때 Copilot이 익숙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구현에 소비한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기본은 했다고 생각했지만, 제 성에는 안 차는 상태로 제출했습니다.
CEO에게 메일 받음
갑자기 지금까지 메일을 주고받던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메일이 와서 여기까지인가? 했는데, 놀랍게도 CEO인 Mark Shuttleworth에게 개인적인 격려 메일을 받았습니다.
다른 인터뷰어에게 너도 받았니?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_+
사실 이때까지는 합격이 목표지 이직은 목표가 아니었는데, 이 시점에서 마음가짐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현 직장) CEO는 내가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6차례의 기술 인터뷰
그 후에 6차례의 인터뷰가 있었고, 이름은 모두 달랐는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터뷰는 모두 기술 인터뷰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캐노니컬은 인터뷰 전에 누가 인터뷰어로 들어올지 이름을 알려줍니다.
구글링 하면 링크드인, 깃헙, 블로그 등 인터뷰어에 대해 미리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화상 인터뷰를 하다 보니 오후 11시에 인터뷰가 있기도 하고 새벽 6시에 있기도 했습니다. 한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다른 타임존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건 어떠냐고 제가 물어봤었는데, 그 부분이 좀 tricky 하다고 하더라고요.
아 참. 새벽에 영어인터뷰 잡지 마세요. 새벽에는 한국말도 잘 못합니다. ㅋ
거의 모든 인터뷰에게 CS지식이 있었고, 실제 연봉 협상이 있었던 최종 인터뷰까지 반 이상을 기술 및 실무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캐노니컬은 한국에 지사가 없기 때문에, 계약 기반으로 일하게 되며 계약을 맺는 사람은 개인사업자를 등록해야 합니다. 저는 계약 기반인 상황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시했고, 캐노니컬은 그냥 회사에서 줄 수 있는 정도를 제시하더라고요.
캐노니컬이 언급한 최고 금액과 제가 제시한 최소금액 사이에는 30K USD 정도의 갭이 있었는데 저는 캐노니컬이 언급한 최고 금액에서 10K USD 정도 윗선에서 계약서가 오면 사인할 생각에, 내가 제시한 금액은 “negotiable” 하다고 언급했고, 아마 더 낮았어도 사인했을 거예요. 인터뷰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좋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다음 주 초에 계약서를 받을 거라고 들었는데, 대신 최종 불합격 메일을 받았습니다.
현 직장에는 이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주 내로 사표를 낼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최종 불합격 메일을 받고서, 바로 ‘네… 안 가게 되었습니다~‘라고 번복하게 되었습니다.
참… 모양 빠지더군요. ㅎㅎㅎ
무엇을 얻었나?
제가 이직할 조짐을 보이자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현 직장에서는 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세 명을 투입할 계획을 세운 걸 알게 됐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며, 이분들 중 두 분과는 함께 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캐노니컬은 채용 과정이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던데, 그래도 끝까지 정주행을 완료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자격지심 덩어리인 제게 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영어 스피킹에 특히 자신이 없는 상태인데, 기술 채용에 있어서는 내 실력으로도 이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규모가 크지 않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게 단점이지만, 실제로 저 캐노니컬 갈 것 같다고 했을 때 기술직군(심지어 백엔드!)에서도 그 회사를 처음 듣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캐노니컬은 좋은 회사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다시 저와 맞는 포지션이 생긴다면 다시 도전해 볼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지원했던 팀이 만들고 있는 그 제품은 망했으면 좋겠네요. ㅋㅋㅋ
끝.